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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뭇잎이 시를 쓴다 / 우당 김지향

신푸르미 2007. 10. 17. 12:58
 

 

 

 

나뭇잎이 시를 쓴다


우당 김지향



고장 난 시간이 가을 속에 멈춰 섰다

세상의 휴게소는 만원을 이루고
들어설 자리가 없는 나는 길로 내쫓겼다
길은 바퀴 없이도 잘 굴러간다

내 앞에 스르륵 미끄러져 온 길이
가득 담은 나뭇잎의 붓끝으로 빨간 시를 쓴다

한 자국도 옮기지 못하는 창백한 내 발등에
마음 아린 나뭇잎이 �.�.�. 혀를 차며
나뭇잎 사이사이 초롱꽃처럼 대롱대롱 피어있는
수은등을 끌어와 불빛 같은 시를 붓는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온 우주에 시를 쓴다
하늘에다 땅에다 사람의 몸에다
빨간 글씨로 쓴다)

블랙홀에서 불어온 먼지바람에도
돌담 위에도 터널 속에도 주렁주렁
시가 익어간다

사람들은 숨차게 뛰어온 삶의 굴레를 벗어
가을의 가지에 걸어놓고
가을내 시를 읽다가 스스로 시가 된다

(높이 올라간 인간들의 투정을 미리 알아챈
눈치빠른 하늘도 마침내 가슴을 열고
비명 같은 삿대질의 시위로 찢기고 찢겨
뚝, 뚝 핏방울의 시를 떨어뜨리며)

시간은 머지않아 바퀴를 돌린다고 송신해 온다


출처 : Namaste
글쓴이 : 마음은 태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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